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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daily] Is Good Architecture Synonymous with Beauty?

RWAs 2022. 9. 22. 14:55

Is Good Architecture Synonymous with Beauty?

Written by Duo Dickinson
September 21, 2022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다. 2000여 년 전, 로마의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 Pollio)는 건축에 있어서 두 가지 기본 실존성인 "강성(Firmness)" (안전성, Safety)과 "가치성(Commodity)" (사용성, Use)을 정의했으며, 건축물(building)을 건축(architecture)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희락(Delight)" (심미성, Beauty)을 제공했다.

"강성"은 금세기에 "회복력(Resilience)"으로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recoined).

30년 동안 다섯 번의 허리케인에도 손상되지 않은 이 건물은 그 자체의 '강성'을 넘어서는 '희락'이 있는가.

"가치성"의 속성은 모든 디자인의 유용성과 적합성에서 발견된다.

이 기록물(archive)에는 계속된 사용됨으로서 자체의 "가치성"을 넘어 "희락"이 있는가?

 

"심미성"은 학습된 정당성에 의해 옹호될 수 있는 판단의 대상이 되는 순수한 예술적 감수성을 나타내는 네 글자의 단어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해하거나 설명하거나 정당화하기 전에 세상에서 기쁨을 경험한다.

그럼 "심미성"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자연계와의 조화(consonance)인가?

 

"심미성"은 정신적인 것인가?

 

아니면 "심미성"은 세심한 세공으로 만들어지는가?

 

나는 "심미성"은 단순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심미성"이 우리가 건축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얄팍한 합리화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몇 년 전 리처드 O. 프룸(Richard O. Prum)"심미성의 진화: 다윈의 잊혀진 짝 선택 이론이 동물 세계와 우리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많은 기사와 평을 낳았는데 예일대 조류학자 프룸이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볼 때 느끼는 극도의 스릴이 종의 생존에 불필요하다고, 하지만 더 많은 경우, 학습된 것이 아니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우리의 기쁨은 먹고 자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경험의 실재는 부정할 수 없다.

지난 세기에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는 "어떤 문제를 연구하고 있을 때, 나는 그것의 심미성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고, 단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하는데, 내가 그것을 완성했을 때, 그 해결책이 아름답지 않다면, 나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50년 동안 건축가이자 과학자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는 그의 삶을 "좋은 건축"이 무엇인지 정의하는데 보냈다.

그는 "좋은 건축"이 근원적인 진리(essential truth)를 가지고 있다고 썼다: "품질은 객관적이고 정확하지만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그(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의 건축에서의 "전체성(Wholeness)"의 추구는 완전히 "객관적이고 정확"했지만, 결국 다른 어떤 정의도 없이 "심미성"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건축에서의 일생이 '명명할 수 없는' 어떤 결국을 향해 갈 때, 우리가 '심미성'을 통제하기는커녕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벅찬 일이다. 
When lifetimes are spent in architecture to an end that “cannot be named”, the acceptance of the fact that we cannot define, let alone control “Beauty” is daunting.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창조자의 어떤 통제도 거스는 처방을 제공했다. "인생은 매우 단순하다. 당신은 무엇인가를 행한다. 대부분은 실패한다. 어떤 것은 잘 작동한다. 당신은 작동하는 어떤 것을 더 많이 행한다."

건축물을 넘어 건축을 만드는데 작동하는 것은 "심미성"이다.

 

인류는 성공을 정의하고 통제하고 재생산하기를 원한다 - 하지만  만일 "좋은 건축" 제작 성공하는 것이 우리의 유전자에 나타나는 통제할 수 없는 반응을 촉진하고 있다면, "심미성"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절묘하게 주관적인 우리 인류의 현실은 건축에서의 진리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우리 각자에게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고 그 근원적인 현실을 듣는 것이 "심미성"을 찾는 가장 어렵고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그리고 "심미성"은 "좋은 건축"을 정의한다.

'강성'과 '가치성'을 넘어서는 '좋은 건축'의 척도는 모든 인간에게서 발견되는데, 합리화에서 비롯된 판단에서 자신의 가치를 검증하려는 이들의 좌절감이 크다. 

작가 헨리 제임스가 말했듯이,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다."